[영화를 보고] 십자가를 닮은 왕의 길-단종
제임스
2026-03-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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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영화를 보면서 다른 각도로 바라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며
또 다른 영화를 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답니다
영화“왕과 사는 남자”를 보다가 문득 마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시선이 어느 한 장면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물게 되는 순간이다.
단종의 유배 길을 바라보며 나는 바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계유정난으로 어린 임금이 왕위를 빼앗기고 궁을 떠나 유배지로 향하는 그 발걸음은 너무도 쓸쓸했다.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밀려나는 모습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한 인간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백성들이 울며 따르던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밀려나는 모습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한 인간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백성들이 울며 따르던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복음 속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해 걸어가시던 그 길이다.
권력자들의 계산과 군중의 무관심 속에서, 예수님 역시 홀로 고통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여인들은 울며 뒤따랐다.
골고타를 향해 걸어가시던 그 길이다.
권력자들의 계산과 군중의 무관심 속에서, 예수님 역시 홀로 고통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여인들은 울며 뒤따랐다.
단종의 길과 예수님의 길은 같을 수 없다.
한 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역사 속의 비운의 임금이다.
그러나 그 두 길이 우리 마음 안에서 겹쳐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억울함 속에서도 끝내 침묵으로 걸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
한 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역사 속의 비운의 임금이다.
그러나 그 두 길이 우리 마음 안에서 겹쳐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억울함 속에서도 끝내 침묵으로 걸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
권력은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까지 완전히 빼앗지는 못한다.
단종이 백성들과 나누었던 짧은 시간의 따뜻함은
그가 왕위에서 밀려난 뒤에도 사람들의 눈물로 남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신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십자가 위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들어 놓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권력을 가진 이들의 편인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밀려나는 이들의 곁인가.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함께 울어주는 자리에 서 있는가.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울고 있는 여인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그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와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처럼 들린다.
단종의 이야기는 끝내 비극으로 남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한 임금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그 길은 부활로 이어졌고,
절망의 이야기는 희망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종을 보며 슬퍼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 안으로 들어오신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 안으로 들어오신 자리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한 장면이 오래 남는다.
말없이 걸어가는 어린 임금의 뒷모습과,
그를 향해 눈물을 흘리던 백성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 위에 겹쳐지는 또 하나의 모습,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위에 겹쳐지는 또 하나의 모습,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어쩌면 신앙인은 이 두 장면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억울한 고통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그러나 그 고통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
그러나 그 고통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
오늘 나는 다시 묻는다.
십자가의 길 위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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