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소 앞에서 눈물짓는 마음] 부활을 준비하는 영혼
본문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면서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는 그 발걸음일 것이다.
마음 깊이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야 하는 자리.
고해소 앞에 서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떨림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요 속에 머무는 그 공간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침묵 속에서,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나의 모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입을 열어 고백을 시작하는 순간, 부끄러움과 회한이 밀려오고, 때로는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한다.
오랜만에 드리는 고해성사라서였을까.
고백할 것은 많았고, 마음의 짐은 무거웠다.
그러나 고해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전혀 달랐다.
마치 오래 묵은 먼지를 씻어낸 듯, 가벼워진 마음.
영혼이 목욕을 한 것처럼 맑아지는 느낌.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이보다 더 큰 위로와 은총이 또 있을까.
펜데믹 기간 동안 성당에 나오는 것조차 두려워 하던 시절
영성체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 찼을 때 고백성사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펜데믹이 끝나고 성당에서 특별한 고해성사 시간이 마련되었었다.
오랫동안 성사에 가까이하지 못했던 신자들을 위해 여러 신부님들이 오셨고,
하루 동안 180여 명이 고해성사를 보기도 하였다.
예전보다 충분히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이 고해의 자리는 단순히 죄를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각자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응어리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하느님 앞에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다.
혹시 그동안 우리는 방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은 환경과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을 아셨던 것일까.
신부님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따뜻했다.
따끔한 지적보다 먼저 건네는 공감,
죄의식보다 먼저 다가오는 위로.
그 순간, 복음 속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멀리서 아들을 보고 달려 나와 끌어안는 그 따뜻함이,
바로 이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57년 전, 3년의 냉담 기간을 지나 다시 성당으로 돌아왔던 날이다.
“고해성사 본 지 3년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낸 그 말에,
고해 신부님은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그때의 그 따뜻함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돌아서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고해성사는 단순한 고백의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돌아올 수 있는 자리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품어 주기 위해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서 고해성사는 죄를 씻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받는 존재로 다시 기억되는 시간이다.
이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세상의 먼지를 털어낸 영혼이 다시 길을 걷는다.
사순의 끝에서 맞이할 부활을 향해,
더 맑은 눈으로,
더 깊어진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 더 겸손한 걸음으로.
고해소 앞에서 흘린 그 눈물은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영혼의 눈물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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